나, 성소수자 노동자 ④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노동권팀 연속 인터뷰
앤디, 엔진, 지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
직장인들의 허황된 꿈 중 1위가 농사, 2위가 자영업이란 말이 있다. 쌓이는 업무에 상사 눈치 보랴, 동료들과 비교 당하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하루 끝에 이럴 거면 그냥 내 사업을 해볼까 하는 마음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특히 성소수자라면 일터에서 스스로를 감춰야만 하는 삶에 신물이 나 더욱 다른 탈출구를 찾게 된다. 그러나 자영업이라고 어디 쉬우랴. 푸디님은 자영업이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고독한 일이라 말한다. 연애는 꿈꾸기도 어렵다. ‘안이나 밖이나 고충은 똑같다’는 말이다.
돈카츠 외길 인생
꿈이 많았던 푸디님은 고등학교 졸업 후에 취업한 곳에서 ‘조직 사회가 나랑 안 맞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살까, 고민하던 시기에 호주에 있는 친구를 보러 무작정 해외여행을 떠났고 거기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전반적인 분위기 속에서 식당을 하급 직업으로 대우했던 당시 한국사회와는 달리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손님들도 서로 존중하고 있었다. 이전부터 요리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남자가 요리를 한다는 것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참아왔던 마음이 호주를 다녀 온 후 “내가 할 일은 요리다” 나아갈 미래가 됐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31살이었다.
어떤 일도 준비없이 되는 일은 없는 법. 31살에 자영업을 결심하고 돌아와 요리를 배우고 일식 돈까스 가게에 취업해 일을 배웠다. 6년의 시간이 지난 후, 37살에야 자신의 가게를 차릴 수 있었다. 첫 가게를 연 곳은 중림동이었다. 5년정도 영업하면서 종잣돈을 모을 수 있었다. 매너리즘을 느낄 때쯤 과감하게 가게를 접고 2년을 쉬면서 다시 돈카츠 공부를 했다. 고기를 즐겨 먹지 않는 편임에도 “일본에 가서 며칠씩 돈카츠만 먹고 오기”를 반복했다. 다시 가게 자리를 알아볼 때도 조심스러움이 더해졌다. 상권이 어떤지 계속 재어봤다. 이미 한 번 해봤기 때문에 여러 조건들을 고려하게 됐고 나이를 먹으니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졌다. 한 가지의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는 100가지의 다른 일들을 감당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 장사를 위한 준비는 철저해야만 했다. 그렇게 지금 자리를 잡은 곳에서 7년 째 영업중이다.
자영업노동자의 하루는 어떨까. 모두가 같지는 않겠지만 푸디님의 하루는 참으로 단순했다. 아침 9시 반 정도에 가게에 나와 한 시간 정도 준비를 한다. 점심장사를 한 후에 2시간 정도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면서 쉬었다가 저녁 장사 준비를 하고 다시 저녁 장사를 하고나면 9시 정도에 영업이 끝난다. 그러나 푸디님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당일 장사를 마무리한 후에 다음날 준비까지 해야하니 모든 일이 끝나는 때는 보통 10시에서 11시 사이가 된다.
“가게에서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아요. 재료가 동시다발적으로 없는 게 아니라 오늘 하다 보면 다음 날 먹을 게 없는, 그러면 그거를 항상 체크를 해요. 고기를 만들면 저는 한 3일 안에는 소진을 하거든요. 사실은 매일 만드는거예요. 오늘은 등심, 내일은 안심, 또 드레싱도 만들고, 오늘은 시장에 갔다 와야 되고 뭘 해야 되고 이게 머릿속에는 24시간 내내죠. 집에서 자려고 해도 아침에 뭘 할지 생각해두고. 가게 생각밖에 없어요.”
푸디님의 머릿속은 24시간 내내 가게 일로 차있다. 5시 30분, 저녁 장사를 막 시작한 시간이다. ©푸디
오롯이 혼자, 원칙을 가지는 일 - 롱런의 비법
장사는 똑같은 일의 반복이다. “나는 매일 똑같은 시간에 나와서” 일해도 매출은 그렇지 않다. “드라마틱하게 매출이 확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날씨가 흐리면 갑자기 손님이 없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 힘들다 좀 늦게 나갈까’ 하는 느슨한 마음이 빼꼼 고개를 든다. 회사의 출근시간처럼 강제하는 장치가 장사에는 없다. 그러니 출퇴근 시간을 비롯한 모든 영업의 원칙은 자신과의 약속이고 이를 잘 지켜내는 일도 스스로에 달렸다. 푸디님은 자영업의 특징 중 하나로 “주도적으로 해나가는 일”이라는 점을 꼽는다. 주도적이라는 것은 자율성은 있지만 다른 의미로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크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주도적으로 해나가면서도 그만큼의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만의 원칙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저는 손님이 있든 없든 간에 내 휴식시간에는 쉬어야 한다는 게 있어요. 돈 만원 더 벌려다 제 몸이 상하니까. 장사를 하려면 내 위주여야 돼. 뭐 예전 같았으면 하루 한 개라도 더 팔려고 했을텐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요.”
손님을 대할 때도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려고 한다. “만약에 (손님이) 정말 나를 화나게 한다면 참지 않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장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기 때문에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하루이틀 하고 말것이 아니라면 몸도, 마음도 다치지 않게 스스로를 보호할 최소한의 장치로써 원칙과 이를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소수자로 자영업자로.
일터에서 성소수자들이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려워 일상적인 대화에 참여하기가 어렵듯이 자영업노동자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손님들은 참 궁금한 것이 많다. “왜 혼자 하세요?”, “사모님은 안 계신거예요?”, “사장님 나이가 나랑 비슷할거 같은데?” 생각지도 않은 질문들이 훅 들어온다. 푸디님은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사장과 손님의 관계를 굳이 그 이상으로 침범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사생활이기도 한 까닭이다. 최근에 가게를 찾는 손님들을 보면 퀴어 정체성에 상당히 열려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렇다고 커밍아웃에 대한 마음이 쉽게 열리지는 않는다.
“예전에 방송을 하자고 사람들이 왔었는데 제가 거절했어요. 그 이유가 게이여서 였는데, 방송에 나오면 관심도 많아지고 아웃팅에 대한 걱정도 있었던거죠. 방송이 나오고 댓글에 ‘사장이 게이라더라’ 이런 생각까지도 하는거예요.”
다른 누구보다 가족이 알게 되는 것이 두렵다. 가게 인테리어를 세심하게 신경 썼으면서도 무지개 소품 하나가 없는 것은 가끔 가게에 들리는 누나가 알게 될까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또 퀴어 업소에 일반인들이 많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 반가운 변화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내심 불편한 마음도 생긴다. “호기심으로 대하는건 불편한 거죠. 그 사람들이 친화적이라고 하지만 절대 친화적인 게 아닌거 같고”
다만, 푸디님이 당사자이기 때문에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대할 수 있어 나와 상대에게 안전하고 편한 공간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자긍심은 있다. 성소수자들이 세심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일은 잘하는 편이라며 응원의 말도 잊지 않는다.
항상 물을 만져야 하는 요식업의 특성 상 핸드크림 같은 건 발라 본 적 없는 투박한 손이지만, 이 손으로 10년 넘게 돈카츠를 만들어왔다 ©푸디
함께 꾸는 꿈
자영업노동자를 노동자로 바라보기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때문에 임금노동자들은 작업환경이나 직업병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는데 반해 자영업노동자들이 처한 노동환경이 어떤지에 대한 연구나 통계는 전무하다. 자영업 노동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데 이성애 가족중심의 제도는 자영업 노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1인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일을 분담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고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이를 무급가족종사자를 고용함으로써 부담을 줄여왔다. 부부가 같이 운영한다거나, 돈관리를 가족이 따로 맡는다거나 아르바이트가 쉬는 날은 자녀들이 일을 돕는다거나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가족 노동에 대한 여러 쟁점과는 별개로 싱글일 수 밖에 없는 성소수자 자영업자에게 큰 박탈감을 준다.
“자영업자들은 1년에 4번 부가세를 내고 5월 달에 종합소득세를 내는데 다자녀거나 65세 이상 부양하거나 하면 혜택이 많아요. 근데 싱글들은 종합소득세 세제혜택이 전혀 없어요.”
“가족구성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일하는 사람이 없을 때 대체인력이 많지만 게이인 저는 그렇지가 않잖아요. 다행히 주변에 누님들이 살아서 도와주시지만 매번 미안함이 크죠. 파트너도 자기 일이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가게를 비워야 할 때이다. “몇 년 전에 제가 탈장이 와서 수술하고 3일을 입원했는데 당장 병원을 가야 된다고 했지만 3일동안 가게 문을 닫아야 하고 식재료도 정리해두어야 하고.. 바로 못가는 거예요. 그리고 가면서도 마음이 편치가 않은 거죠.” 반 나절 가게를 비우는 게 부담스러워 건강검진 받기도 어렵다는 푸디님은 아파도 병원에 가기 힘들 때 가장 서럽다고 말한다.
푸디님은 게이이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싱글일 수 밖에 없고, 싱글이기때문에 자영업자로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토로했다. 이는 성소수자들의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요구함과 동시에 1인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한다. 자영업 노동자들이 가족에 의지하거나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1인이나 소규모 업소에 대해서 지자체가 지원할 수 있다면 어떨까. 지자체가 사회보험 부담을 나누면 사회보험에 가입하는 자영업노동자들도 늘어날 것이다. 업종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인력지원을 하면 경조사나 급하게 가게를 비우기 어려운 경우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인건비를 지자체가 부담하고 회사로 대입하면 병가나 유급휴가 같은 개념을 충분히 도입할 수 있지 않을지 상상해 본다.
“대체 인력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거 같고 하루 임대료가 150만원 정도면 일 5만원이니까 그거라도 보존이 되면 저는 좋을거 같아요.”
마음 놓고 장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함께 꿈꾸면서 그럼에도 자영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과 푸디님의 꿈을 물었다.
“포기해야 해요. 내 생활을 좀 포기하고.. 도와줄 수 있는 가족이 없다는 거, 싱글인 게이로 자영업을 한다는 건 몇 배로 더 힘들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책임의 무게를 생각하라는 충고다. 거듭 이 부분을 강조한 것은 이성애 가족중심의 사회에서 홀로 버텨내어야 했던 시간이 그만큼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리라. 더불어 자영업으로 돈 버는 일을 쉽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생활에 많은 부분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반짝할 아이템에 솔깃해 장사를 시작하지 말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원칙을 가지고 진득하게 밀어붙일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만한 각오로 시작했다면 자영업은 소박한 만족감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먹어본 중에 제일 맛있다’ 고 평가해줄 때나 가끔 테이블을 치울 때 남긴 거 없이 다 먹고 가시는 거 볼때는 정말 기분 좋죠” 그래서일까. 힘들다면서도 푸디님의 꿈은 여전히 소박하게 자영업노동자로 살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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