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성소수자 노동자 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노동권팀 연속 인터뷰
사루, 슈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
A는 20대 논바이너리다. 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일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성소수자임을 드러내고 활동하긴 어렵지만, 항상 성소수자 활동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다고 A는 말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도서관에서 교육봉사를 했었어요. 원래 제가 아이들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어른들을 만나는 것보다는 아이를 만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사라는 직업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육대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길든 짧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해보는 학창시절, 그리고 교사에 대한 익숙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노동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는 당사자가 아니면 쉬이 알기 어렵다. 학교에서 일하는 성소수자 비정규직 교육노동자로서의 경험은 ‘선생님’ 세 글자에서 느껴지는 친근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논바를 위한 학교는 없다
전교조 성평등특별위원회에서 제작한 ‘우리 학교에도 성소수자가 있습니다.’ 포스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성평등특별위원회
“제가 성소수자가 아니었거나, 성소수자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아무렇지 않게 여겼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이 쪽’이니까요”
교사를 꿈꾸며 내딛은 첫 발부터 학교는 논바이너리에게 호락호락한 공간이 아니었다. 교직사회의 성소수자 차별은 이력서를 작성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성별 란이 여/남 양자택일 형태가 아닌 공란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이 자신이 정체화하는 성별을 자유롭게 기입해도 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학력 란 역시 마찬가지인데, 단성학교를 나온 경우 ‘여중·고’, ‘남중·고’와 같이 자신의 지정성별이 이력서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트랜스젠더의 경우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맞게 이력서를 작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당사자가 아닌 입장에서는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일이나, 이는 한편으로 우리의 공교육 체제가 성소수자 교사, 특히 트랜스젠더 교사의 존재 가능성 자체를 고려하지 않음을 채용 과정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선생님은 남자에요, 여자에요?”라고 물어보면 둘 다 아니라고 대답을 하거든요. 그런데 생존수영 수업을 하고 나면 아이들이 저의 패싱을 강화하는 느낌을 받아요. ‘선생님이 우리 탈의실에 들어왔어. 그러면 나랑 같은 성별이지.’ 이렇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초등학교에서는 생존수영 교육이 있다. 수영장에서 진행되는 교육이니만큼 탈의실 지도 역시 이뤄지는데, 이 경우 학생과 교사 모두 스스로 정체화하는 성별과 관계 없이, 법적인 성별에 따라 탈의실을 이용하게 된다.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다른 교사에게 탈의실 지도를 맡기기도, 별도의 분리된 탈의 공간을 이용하기에도 사정이 여의치 않다.
해외에 설치된 성중립 화장실의 표지판 ©pixabay
‘남학생은 1번부터, 여학생은 41번부터’와 같은 식의 학번 나누기,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과 같은 학교 내 성별 구분이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수영장이나 화장실 지도 등을 하게 되면 언젠가 한 번쯤은 꼭 여남으로 학생들의 성별을 구분하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된다. 성중립화장실 역시 아직 학교에서는 꿈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교사 개인이 성별이분법적 프레임을 깨려고 노력해도, 성별이분법을 전제로 한 교육의 내용과 공간이 학생들에게 이를 계속해서 재생산한다.
‘가족같은 학교’, 거기 성소수자도 끼워주나요?
“외모나 옷차림에 대한 평가를 하신다거나, 성별이분법적인 이야기들이 당연하다거나. 여성이 아무리 많은 직장이라고 해도 여전히 좀 편견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에게도 가끔은 적대적인 환경인데 퀴어에게는 우호적일까 싶기도 하고요.”
교사는 여성이 다수인 대표적인 직군이다. 그러나 이것이 꼭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난 직군임을 말하지는 않는다. 전체 교사 수는 여성이 많으나 교장·감은 남성이 다수인 등 교직사회 역시 우리 사회의 차별과 젠더불평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시각 역시 마찬가지다.
“마땅한 해결 방법이 생각 안 나서 일단 참고 넘어가는 편이었어요. 만약 제가 정규직이어서 그 학교에 몇 년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아마 목소리를 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계약직이기도 하고, ‘어차피 나는 이 학교 떠날 사람이니까’, 이렇게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A는 교직사회의 조직문화가 폐쇄적인 편이라고 말한다. 특히 초등의 경우 교육대학교가 광역별로 있다보니 지역으로 내려갈수록 학연으로, 지연으로 일종의 이너서클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교장 선생님이기 이전에 학교 선배고, 동료 교사이기 이전에 동향(同鄕) 사람인 ‘끈끈한’ 관계 속에서 타인과 다른 나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정상성에 대한 압박 역시 강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미혼의 젊은 교사’에게 연애와 결혼은 너무나 던지기 쉬운 화제이고, 용모와 외모에 대한 지적은 ‘선생다운 단정함’을 앞세워 정당화된다. 성소수자에 대한 적극적인 혐오는 아직 겪어보진 않았으나, 오히려 명확히 받아칠 대상이나 방법이 없기에 더욱 마음이 불편하다고 A는 고백한다.
답답한 상황이지만,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다. 단기 계약직이고, 몇 달 후면 이 학교를 떠나게 되니 문제를 일으키기보다는 속으로 삭이고 넘어가는 편이다. 통념적으로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한 지역이기 때문일까, 이런 고민을 나눠볼 수 있는 지역사회 성소수자와 앨라이의 공동체도 찾기 힘든 상황. 교직 내에서, 그리고 학교 내에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기는 더한층 어렵다. 곧 떠날 학교와 이해자를 찾기 어려운 지역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항상 이방인이 된 듯한 고립감을 견뎌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퀴어 교육할 권리가 곧 교육노동자의 권리
“한 학생이 ”선생님, 저는 남자예요, 여자예요?“ 하고 물었어요. ”글쎄, 너는 어떻게 생각해?“ 하니까 잘 모르겠다고 해요. 그런데 혼자서 계속 고민을 하다가 보호자에게 울먹이면서 다시 물어봤다는 거예요. 진지하게 고민을 한 거죠. 그 보호자랑 다른 일로 전화를 하다가, 그 때 왜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이에게 답을 안 해줬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상상하지 못하는 공간은 그 곳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자기검열을 강요한다. 학교에서 일하는 교육노동자에게 이러한 자기검열의 압박은 동료와의 관계에서 ‘여기 너를 위한 자리는 없다’라는 냉대로 다가오는 한편, ‘성소수자에 대해 가르치지 말라’는 위협으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아직까지 학교에서의 성소수자 교육은 ‘금기’에 가깝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성소수자’ 용어가 삭제되는 등 공식적 교육과정 영역에서의 퇴보가 있었고, 개별 교사의 재량으로 성소수자와 관련한 내용을 수업에서 다루기도 쉽지 않다.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민원도 들어오고, 최악의 경우 징계까지도 받을 수 있겠다 싶어요. 저희 학교에서는 (정체성을) 드러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 없어요.”
교사의 입장에서 가장 부담이 되는 부분은 단연 민원이다. 사람과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는 당연한 사실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서로 동등한 ‘의견’으로 취급되는 우리 사회 공론장의 취약함이 악성 민원에서 교사를 전혀 보호하지 못하는 학교 구조와 맞물려 성소수자 교육을 하려는 교사에게 상당한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A는 성소수자와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큰 부담임을 밝히며, 교사가 스스로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할 경우 빗발치는 민원과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징계될 가능성도 있음을 염려하기도 했다.
모두에게 안전한 학교를
“최근의 사회적 사건들로 학교에서 노조 가입 권유나 홍보는 많아졌어요. 그런데 가입 요건이 제한되는 등 기간제 교사는 가입이 어려운 상황이에요. 하는 일은 정규직 교사와 똑같은데, 달라져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노동자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노동조합이다. 악성 민원으로 교사들이 잇따라 목숨을 잃은 최근의 사건들 이후 현장에서는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크게 형성되고 있다. 교원노조들의 조합원 수 역시 대폭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규직이 아닌 기간제 교사의 입장에서 노동조합 가입은 그림의 떡이다. 노동조합이 가입 요건을 정규직 교사로 한정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현실적으로 조합원 활동이 어렵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위험 요소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비정규직이기에 그러한 위협이 훨씬 크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 교육노동자에게 더욱 노동조합이 절실하다.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교사에게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A는 힘주어 말했다.
교육노동자의 처우와 관련한 최근의 사회적 사건들에 대해서도, A는 상호간의 예의라는 기본을 지켜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결혼과 임·출·육에 대한 무례한 질문, 업무시간 이후의 사적인 연락 등 일반적으로 용인되지 않을 일들이 교사와 보호자 관계에서는 너무 쉽게 이뤄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불이 붙고 있는 교사의 처우에 대한 여러 논의들이 보장받아야 할 권리로서의 측면들과, 과거 권위주의적이던 교사상을 다시금 소환하는 측면들이 혼재되며 오히려 교사를 더욱 옥죄고 있는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첫 번째는 ‘이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는 것, 두 번째는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세 번째는, 간절하게 원합니다. 성중립 화장실.”
지금 학교와 교육에 꼭 필요한 것들을 묻는 질문에 A는 위와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위기의 시대, 거대한 백래시를 눈 앞에 두고 있음에도, 길게 보면 우리의 학교와 교육은 느리지만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 ‘성소수자 불모지’인 지금의 학교가 언젠가는 A의, 그리고 모든 성소수자 동료 시민들의 바람을 담아낼 수 있길, 퀴어 교육노동자와 퀴어 학생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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